최원의 시네마토크 –포장되지 않은 언어로 당신을 보고 싶어요 (영화 넬)
Choi's Cinema Talk: "Leaving Fabricated Language Behind" from movie Nell
Published on Christian Today
August 17, 2013
Choi's Cinema Talk: "Leaving Fabricated Language Behind" from movie Nell
Published on Christian Today
August 17, 2013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언어나 소통방법에 대한 “울렁증”이 있다. 해외여행을 갈 때 어떻게 소통해야할지, 외국어 공부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새로 나온 SNS는 어떻게 쓰는건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소통은 역사 속에 늘 있어왔고 언어는 그 소통의 방법에 불과함에도 다른 언어를 대할 때 우리는 두려움으로 허우적거린다. 언어가 우리 가운데 차지하는 무게가 그만큼 크다. 조디 포스터 주연의 1995년작 <넬>에서 넬 역을 맡은 조디 포스터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던지는 대사는 영화 막바지에 던지는 단 한마디 “기억해” 뿐이다. 그녀는 영화 내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한 마디의 언어도 문화도 구사하지 않는다.
닥터 제리 러벨(리암 니슨)은 식료품 배달부에게 오두막에 살던 여자가 죽었다는 신고를 받고 시체 수습에 나선다. 인적 없는 깊은 산 속 호숫가의 통나무집, 감은 두 눈에 꽃을 얹은채 홀로 바닥에 누워있는 늙은 여인. “나의 넬을 지켜주세요”라고 엉망인 글씨체로 성경에 꽂혀있던 편지. 그 곳에서 닥터 러벨은 넬을 만난다. 죽은 여자의 딸인 넬은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하고 소리를 질러대는 둥 “야생녀”와 같은 행동을 구사한다. 제리는 넬을 지키려는 일념으로, 심리학자 폴라 올센(나타샤 리차드슨)은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와 연구하려는 목적으로 넬 곁에 캠프를 꾸미고 그녀를 관찰한다. 하지만 점점 넬의 순수함에 매료된 그들은 넬을 연구대상과 가십거리로 대하는 세상으로부터 그녀를 지키겠다고 결심한다.
한국의 유명 밴드 넬은 본래 “ilot”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으나 이 영화를 보고 이름을 넬로 바꾸었다고 알려져있다. 넬이 “그녀만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과 그 순수함에 매력을 느꼈다는 것이다. 하지만 넬의 언어는 사실 영어다. 제리는 넬에 대해 연구하며 그녀의 엄마가 성폭행을 당해 외딴 숲 속으로 도피했다는 것을 알아낸다. 넬의 엄마는 성폭행에 대한 충격으로 영어를 원래 발음하던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실어증을 앓았고 넬은 그 언어를 배우고 자란 것이다. 그래서 스피크(speak)를 스피로, 밸리(belly)를 밸레라고 말하는 듯 불완전한 영어를 구사한다. 더불어 엄마가 가르친대로 남자를 이버도(evil doer:악을 행하는 사람)라고 부르며 남자를 피해 낮에는 오두막에 숨어있다가 밤에만 밖으로 나왔다.
그런 바깥 세상과 남자에 대한 공포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소통하려 노력하고 인내하는 제리에게 넬은 마음을 열고 가이인자(가디언 엔젤: 수호천사)라고 부르며 따른다. 넬의 순수한 모습에 제리와 폴라는 행복해져간다. 특히 정신질환에 시달리던 메리(넬이 사는 숲을 관리하던 보안관의 아내)는 넬을 만나 편안함과 위로를 얻는다. 변화하는 메리의 모습에 보안관 역시 감동한다.
사람은 많은 것으로 포장되어있다. 언어, 지식, 현대 문명, 인간관계, 개인의 신념 등. 사람의 본질 위에 포장이 얹혀 우리는 상대보다도 그들을 감싸고있는 겉포장을 본다. 넬의 소통 방법은 언어나 문화를 통하지 않는 인간 그 자체로서의 소통이다. 공부를 하거나 사람과의 관계를 가져보지 않았던 그녀가 폴라나 메리를 위로할 수 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넬은 상처의 원인을 분석하거나 개인의 견해를 늘어놓는 대신 상처받은 이의 마음을 그대로 보고 마음으로 위로했기 때문이다. 영어나 문명이 아닌 모든 인간이 가진 공통 언어, 진심으로 말이다.
넬을 실험대상으로서 병원으로 데려가기 위해 벌어진 재판에서 넬은 제리에게 통역을 부탁해 직접 증언을 시작한다. “당신들은 큰 것을 알고 있어요. 큰 것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들은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지 않아요. 그리고 당신들은 고요함에 굶주려있어요… 모든 것은 결국은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나는 당신들보다 더 고통스럽거나 슬프지 않습니다.”
언어와 문명이 난무하는 요즘, 나는 고요함이 고프다. 당신의 언어가 세련되었는지, 카카오톡을 하는지, 어떤 브랜드를 좋아하는지를 따지는 대신 그대의 눈을 들여다보고 이모티콘이나 언어로 포장되지 않은 진심을 보고싶다. 우리가 집착하는 것들은 단지 소통의 통로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 통로보다도 그 속에 전해지는 마음이 고프다.
Choi Won’s Verdict
영화속 놓치지 말아야 할 세가지
1. 반짝이는 호숫가: 넬의 순수함만큼이나 아름다운 로케이션이다. 한밤중 은은한 달빛과 멋진 자연 속에 위치한 호숫가, 그 안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넬의 모습에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2. 닥터들의 비하인드 스토리: 제리역의 리암 니슨과 폴라역의 나타샤 리차드슨은 넬에서의 인연으로 결혼에까지 골인했다. 나타샤 리차드슨은 2009년 스키사고로 인해 45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고 두 아들과 남은 리암 니슨은 힘든 시간을 보냈다. 영화 속에서만큼은 아직 살아있는 두 연인, 그들이 주고받는 감정은 사랑스럽기 그지 없고 훌륭한 배우 하나를 잃은 것을 서글프게 한다.
3. 넬: 사실 이 영화에서 만큼은 넬 이외의 다른 요소들에 큰 비중을 두고싶지 않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백지와도 같은 넬이라는 캐릭터에 조디 포스터는 숨을 불어넣었다. 말그대로 신들린 연기력으로 완벽하게 넬이 된 그녀의 맑은 눈을 실제 넬을 보듯 들여다보자. 자기들끼리 북치고 장구치는 캐릭터들을 구경만하고 메세지를 캐내야하는 보통 영화들과 달리 <넬>은 캐릭터와 관객의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한 영화다.
닥터 제리 러벨(리암 니슨)은 식료품 배달부에게 오두막에 살던 여자가 죽었다는 신고를 받고 시체 수습에 나선다. 인적 없는 깊은 산 속 호숫가의 통나무집, 감은 두 눈에 꽃을 얹은채 홀로 바닥에 누워있는 늙은 여인. “나의 넬을 지켜주세요”라고 엉망인 글씨체로 성경에 꽂혀있던 편지. 그 곳에서 닥터 러벨은 넬을 만난다. 죽은 여자의 딸인 넬은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하고 소리를 질러대는 둥 “야생녀”와 같은 행동을 구사한다. 제리는 넬을 지키려는 일념으로, 심리학자 폴라 올센(나타샤 리차드슨)은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와 연구하려는 목적으로 넬 곁에 캠프를 꾸미고 그녀를 관찰한다. 하지만 점점 넬의 순수함에 매료된 그들은 넬을 연구대상과 가십거리로 대하는 세상으로부터 그녀를 지키겠다고 결심한다.
한국의 유명 밴드 넬은 본래 “ilot”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으나 이 영화를 보고 이름을 넬로 바꾸었다고 알려져있다. 넬이 “그녀만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과 그 순수함에 매력을 느꼈다는 것이다. 하지만 넬의 언어는 사실 영어다. 제리는 넬에 대해 연구하며 그녀의 엄마가 성폭행을 당해 외딴 숲 속으로 도피했다는 것을 알아낸다. 넬의 엄마는 성폭행에 대한 충격으로 영어를 원래 발음하던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실어증을 앓았고 넬은 그 언어를 배우고 자란 것이다. 그래서 스피크(speak)를 스피로, 밸리(belly)를 밸레라고 말하는 듯 불완전한 영어를 구사한다. 더불어 엄마가 가르친대로 남자를 이버도(evil doer:악을 행하는 사람)라고 부르며 남자를 피해 낮에는 오두막에 숨어있다가 밤에만 밖으로 나왔다.
그런 바깥 세상과 남자에 대한 공포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소통하려 노력하고 인내하는 제리에게 넬은 마음을 열고 가이인자(가디언 엔젤: 수호천사)라고 부르며 따른다. 넬의 순수한 모습에 제리와 폴라는 행복해져간다. 특히 정신질환에 시달리던 메리(넬이 사는 숲을 관리하던 보안관의 아내)는 넬을 만나 편안함과 위로를 얻는다. 변화하는 메리의 모습에 보안관 역시 감동한다.
사람은 많은 것으로 포장되어있다. 언어, 지식, 현대 문명, 인간관계, 개인의 신념 등. 사람의 본질 위에 포장이 얹혀 우리는 상대보다도 그들을 감싸고있는 겉포장을 본다. 넬의 소통 방법은 언어나 문화를 통하지 않는 인간 그 자체로서의 소통이다. 공부를 하거나 사람과의 관계를 가져보지 않았던 그녀가 폴라나 메리를 위로할 수 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넬은 상처의 원인을 분석하거나 개인의 견해를 늘어놓는 대신 상처받은 이의 마음을 그대로 보고 마음으로 위로했기 때문이다. 영어나 문명이 아닌 모든 인간이 가진 공통 언어, 진심으로 말이다.
넬을 실험대상으로서 병원으로 데려가기 위해 벌어진 재판에서 넬은 제리에게 통역을 부탁해 직접 증언을 시작한다. “당신들은 큰 것을 알고 있어요. 큰 것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들은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지 않아요. 그리고 당신들은 고요함에 굶주려있어요… 모든 것은 결국은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나는 당신들보다 더 고통스럽거나 슬프지 않습니다.”
언어와 문명이 난무하는 요즘, 나는 고요함이 고프다. 당신의 언어가 세련되었는지, 카카오톡을 하는지, 어떤 브랜드를 좋아하는지를 따지는 대신 그대의 눈을 들여다보고 이모티콘이나 언어로 포장되지 않은 진심을 보고싶다. 우리가 집착하는 것들은 단지 소통의 통로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 통로보다도 그 속에 전해지는 마음이 고프다.
Choi Won’s Verdict
영화속 놓치지 말아야 할 세가지
1. 반짝이는 호숫가: 넬의 순수함만큼이나 아름다운 로케이션이다. 한밤중 은은한 달빛과 멋진 자연 속에 위치한 호숫가, 그 안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넬의 모습에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2. 닥터들의 비하인드 스토리: 제리역의 리암 니슨과 폴라역의 나타샤 리차드슨은 넬에서의 인연으로 결혼에까지 골인했다. 나타샤 리차드슨은 2009년 스키사고로 인해 45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고 두 아들과 남은 리암 니슨은 힘든 시간을 보냈다. 영화 속에서만큼은 아직 살아있는 두 연인, 그들이 주고받는 감정은 사랑스럽기 그지 없고 훌륭한 배우 하나를 잃은 것을 서글프게 한다.
3. 넬: 사실 이 영화에서 만큼은 넬 이외의 다른 요소들에 큰 비중을 두고싶지 않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백지와도 같은 넬이라는 캐릭터에 조디 포스터는 숨을 불어넣었다. 말그대로 신들린 연기력으로 완벽하게 넬이 된 그녀의 맑은 눈을 실제 넬을 보듯 들여다보자. 자기들끼리 북치고 장구치는 캐릭터들을 구경만하고 메세지를 캐내야하는 보통 영화들과 달리 <넬>은 캐릭터와 관객의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