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의 시네마토크 – 나는 어떤 욕망을 품고 있는가? (영화 더 테러 라이브)
Choi's Cinema Talk: "What do I desire?" from movie The Terror Live
Published on Christian Today
August 17, 2013
Choi's Cinema Talk: "What do I desire?" from movie The Terror Live
Published on Christian Today
August 17, 2013
미국의 60년대는 요동쳤다. TV의 등장으로 베트남 전쟁의 참상이 가정의 안방에서 적나라하게 방영되며 국민은 회의와 충격에 빠졌고, 63년, 이상적인 가정과 아름다운 아메리칸 라이프를 상징하던 케네디 가족은 케네디의 암살과 함께 몰락했다. 이 시기 나온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1967)>는 영화의 금기들을 깨며 헐리우드의 새 시대를 열었다. 전에 없던 적나라한 누드와 폭력의 낭만적인 묘사는 지고지순한 헐리우드를 뒤집었다. (그나저나 ‘Bonnie & Clyde’라는 지지부진한 제목이 한국에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로 변신하다니 놀랍다.)
언젠가부터 한국 영화에도 비슷한 바람이 불었다. 권선징악이나 영웅의 승리, 개과천선, 자수성가 등의 테마로부터 한국 영화는 서서히 독립해갔다. 뚜렷한 선도 악도 없고, 주인공이 죽기도 하고, 악이 승리하기도 한다.
<더 테러 라이브>도 그 줄기의 하나다.
프라임 시간대 뉴스에서 밀려나 라디오 프로를 맡아 하고있는, 한 때 잘 나가던 앵커였던 윤영화(하정우)는 라디오에 걸려온, 한강 다리를 폭파하겠다는 청취자의 전화를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하지만 실제로 다리가 폭파하고난 뒤, 그는 그 기회를 자신의 특종 기회로 삼아 다시 뉴스로 돌아갈 계획을 재빠르게 세운다.
그 사이 오가는 보도국장과의 딜, 떠나간 아내에게 재결합하자는 메세지,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는 테러범과 그의 사정이 아무리 기구한들 범죄자라며 막말하는 경찰총장, 끝까지 오지 않고 다른 희생양을 찾아내는 대통령…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본 후 “갑의 횡포”를 떠올리는 모양이다.
하지만 아니, 이 영화는 끝까지 인간의 욕망과 욕망의 싸움으로 점철되어있다.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갑도 을도 존재하지 않는다. 언론인 신뢰도 1위의 윤영화 앵커도 개인 비리가 있고 마이크 뒤에서는 출세하기 위해 발버둥 치며 차대은 국장(이경영)도 결국은 자신의 시청률과 자신의 승진을 위해 윤영화의 야욕을 이용한다. 정의로워야하는 경찰총장은 권력과 법을 방패 삼아 상식 밖의 주장을 펼친다. 테러를 저지르기는 했으나 사람을 죽이지 않으려 노력하고, 동정할만한 이유가 있었던 테러범도 의도치 않게 희생자를 낸다.
관객들은 분노할 것이다. “아니 어떻게 언론인이, 어떻게 정치인이, 경찰이 저럴 수 있어?” 그렇게 테러범을 두둔할 것이다. 하지만 따지고보면 테러범도 범죄자인데다 복수의 화신일 뿐이다. 언론인도, 정치인도, 경찰도 인간이고.
여기서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져야할 질문은 ‘갑의 횡포’가 아닌 “나의 욕망이 날 것으로 이 세상에 나온다면 나도 저들과 다를 바 없겠구나”다. 영화의 등장인물 모두 스스로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며 그가 충돌한다. 단지 개인의 위치와 권력에 따라 욕망의 실현 방법이 다를 뿐.
나의 욕망은 어떤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나와있는가. 물론 유익한 욕망도 있겠다. 하지만 대개 다른 사람은 짓누르고 나만을 위한 욕구일게다. 남의 욕망이 날뛰는 모습을 보니 추하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욕망과 욕망이 만날 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
결국 딱한 사정의 테러범도, 테러의 한 가운데를 지키던 용감한 기자도 죽는다. 크게 한 탕 하려던 윤영화는 아내가 죽고 자신의 비리가 만 천하에 공개된 상황 중에도 자신 목숨만 살려달라고 테러범에게 애걸한다. 이 모든 사건의 중심지인 방송국 건물은 폭발 후 버티는가 싶더니 국회의사당 위로 무너져내린다. 본 영화는 그들의 죽음을 낭만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뿐.
대개의 영화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주인공을 가장 많이 접하고 애정을 가지게 되고 그가 승리하기를 바란다. 윤영화가 테러범의, 그 흔하디 흔한(!) 절벽에서 손 잡고 당겨주는 구도에서 우리가 그들을 응원하는 도중 테러범은 사살당한다. <더 테러 라이브>는 영화에 대한 모든 환상을 깨버리고 약 올리듯 “그게 현실이란다, 현실”이라고 말한다. 욕망이 넘쳐나기 때문에. 우리는 정글 속에서 살아간다. ‘갑의 횡포’ 운운하지 말고 “나는?”이라고 묻자. 우리의 욕망은 어떻게 추하게 나타나는지, 선한 욕망은 어떻게 추구해야하는지 고민해야겠다.
<더 테러 라이브> 관전 포인트 3가지
1. 방송국 엿보기: 재빠른 생방송 셋업과 정보 교환, 오고 가는 지령, 방송국 내 위계 질서. 전에 보던 속보 보도가 이렇게 이루어졌구나 대입해보면 즐겁다. 하정우는 실제로 손석희 JTBC 사장의 아나운서 시절 뉴스속보를 연구하며 배역에 몰입했다고 했다. 욕을 할땐 여전히 “살아있네” 할 때의 껄렁한 건달 모습이 겹쳐 껄끄럽긴 하지만서도. (영화 시사회에 손석희 JTBC 사장도 참석했다.)
2. 감초 여배우들: 영화의 70%는 하정우의 대사로 이루어져있고 (하정우의 리드력 박수) 배경 설정 자체가 소규모인데다 대부분 남자배우들로 채워져있다. 이경영의 안정감 있는 연기는 매우 훌륭하다. 하지만 출연 시간은 짧아도 강한 인상을 남긴 전혜진과 김소진의 연기가 결국 냉면 고명처럼 영화를 완성시킨다.
3. 스피드: 속보라는 설정 상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간다. 하정우의 앵커 변신, 오고 가는 전화, 방송 송출 사이 숨 막히는 대화, 그러면서도 중간 중간 결정적인 순간에 느려지는 속도감. 관객이 영화의 흐름과 함께 숨쉴 수 있다.
언젠가부터 한국 영화에도 비슷한 바람이 불었다. 권선징악이나 영웅의 승리, 개과천선, 자수성가 등의 테마로부터 한국 영화는 서서히 독립해갔다. 뚜렷한 선도 악도 없고, 주인공이 죽기도 하고, 악이 승리하기도 한다.
<더 테러 라이브>도 그 줄기의 하나다.
프라임 시간대 뉴스에서 밀려나 라디오 프로를 맡아 하고있는, 한 때 잘 나가던 앵커였던 윤영화(하정우)는 라디오에 걸려온, 한강 다리를 폭파하겠다는 청취자의 전화를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하지만 실제로 다리가 폭파하고난 뒤, 그는 그 기회를 자신의 특종 기회로 삼아 다시 뉴스로 돌아갈 계획을 재빠르게 세운다.
그 사이 오가는 보도국장과의 딜, 떠나간 아내에게 재결합하자는 메세지,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는 테러범과 그의 사정이 아무리 기구한들 범죄자라며 막말하는 경찰총장, 끝까지 오지 않고 다른 희생양을 찾아내는 대통령…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본 후 “갑의 횡포”를 떠올리는 모양이다.
하지만 아니, 이 영화는 끝까지 인간의 욕망과 욕망의 싸움으로 점철되어있다.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갑도 을도 존재하지 않는다. 언론인 신뢰도 1위의 윤영화 앵커도 개인 비리가 있고 마이크 뒤에서는 출세하기 위해 발버둥 치며 차대은 국장(이경영)도 결국은 자신의 시청률과 자신의 승진을 위해 윤영화의 야욕을 이용한다. 정의로워야하는 경찰총장은 권력과 법을 방패 삼아 상식 밖의 주장을 펼친다. 테러를 저지르기는 했으나 사람을 죽이지 않으려 노력하고, 동정할만한 이유가 있었던 테러범도 의도치 않게 희생자를 낸다.
관객들은 분노할 것이다. “아니 어떻게 언론인이, 어떻게 정치인이, 경찰이 저럴 수 있어?” 그렇게 테러범을 두둔할 것이다. 하지만 따지고보면 테러범도 범죄자인데다 복수의 화신일 뿐이다. 언론인도, 정치인도, 경찰도 인간이고.
여기서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져야할 질문은 ‘갑의 횡포’가 아닌 “나의 욕망이 날 것으로 이 세상에 나온다면 나도 저들과 다를 바 없겠구나”다. 영화의 등장인물 모두 스스로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며 그가 충돌한다. 단지 개인의 위치와 권력에 따라 욕망의 실현 방법이 다를 뿐.
나의 욕망은 어떤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나와있는가. 물론 유익한 욕망도 있겠다. 하지만 대개 다른 사람은 짓누르고 나만을 위한 욕구일게다. 남의 욕망이 날뛰는 모습을 보니 추하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욕망과 욕망이 만날 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
결국 딱한 사정의 테러범도, 테러의 한 가운데를 지키던 용감한 기자도 죽는다. 크게 한 탕 하려던 윤영화는 아내가 죽고 자신의 비리가 만 천하에 공개된 상황 중에도 자신 목숨만 살려달라고 테러범에게 애걸한다. 이 모든 사건의 중심지인 방송국 건물은 폭발 후 버티는가 싶더니 국회의사당 위로 무너져내린다. 본 영화는 그들의 죽음을 낭만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뿐.
대개의 영화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주인공을 가장 많이 접하고 애정을 가지게 되고 그가 승리하기를 바란다. 윤영화가 테러범의, 그 흔하디 흔한(!) 절벽에서 손 잡고 당겨주는 구도에서 우리가 그들을 응원하는 도중 테러범은 사살당한다. <더 테러 라이브>는 영화에 대한 모든 환상을 깨버리고 약 올리듯 “그게 현실이란다, 현실”이라고 말한다. 욕망이 넘쳐나기 때문에. 우리는 정글 속에서 살아간다. ‘갑의 횡포’ 운운하지 말고 “나는?”이라고 묻자. 우리의 욕망은 어떻게 추하게 나타나는지, 선한 욕망은 어떻게 추구해야하는지 고민해야겠다.
<더 테러 라이브> 관전 포인트 3가지
1. 방송국 엿보기: 재빠른 생방송 셋업과 정보 교환, 오고 가는 지령, 방송국 내 위계 질서. 전에 보던 속보 보도가 이렇게 이루어졌구나 대입해보면 즐겁다. 하정우는 실제로 손석희 JTBC 사장의 아나운서 시절 뉴스속보를 연구하며 배역에 몰입했다고 했다. 욕을 할땐 여전히 “살아있네” 할 때의 껄렁한 건달 모습이 겹쳐 껄끄럽긴 하지만서도. (영화 시사회에 손석희 JTBC 사장도 참석했다.)
2. 감초 여배우들: 영화의 70%는 하정우의 대사로 이루어져있고 (하정우의 리드력 박수) 배경 설정 자체가 소규모인데다 대부분 남자배우들로 채워져있다. 이경영의 안정감 있는 연기는 매우 훌륭하다. 하지만 출연 시간은 짧아도 강한 인상을 남긴 전혜진과 김소진의 연기가 결국 냉면 고명처럼 영화를 완성시킨다.
3. 스피드: 속보라는 설정 상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간다. 하정우의 앵커 변신, 오고 가는 전화, 방송 송출 사이 숨 막히는 대화, 그러면서도 중간 중간 결정적인 순간에 느려지는 속도감. 관객이 영화의 흐름과 함께 숨쉴 수 있다.